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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쏠림 현상은 한국 혁신기업의 불씨를 꺼뜨리고 있다!

by 불꽃히멀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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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보고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이공계열 기피 현상을

보면서 향후 국가경쟁력이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되었습니다.

현재 제3차 대전으로 불리는 반도체 전쟁이

발생하고 있고, 거기에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재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과학, 이공계 계열의

인재들이 의대로만 쏠린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향후 한국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 수 있을지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1.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출주도형 경제로 전환

한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부분이

수출 주도적 경제로 진행하였기에 가능했던 부분이었고

초반에 수출 진행했던 항목들은 원자재 가공,

섬유의류가 초반 수출 항목에서 주를 이루는

항목들이었습니다.

1963년 수출실적은 8천7백만 달러 _ 한국무역협회 기준

현재 한화 가치로 1158억 8,400만 원입니다.

그중 공산품 수출액이 차지하는 부분이

2810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약 374억 달러였으니 약 32% 정도가 공산품이

차지하는 비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monthly.chosun.com에서  이미지 발췌

 

 

쿠데타로 나라를 장악한 박정희 군부(軍部)에 무슨 독자적인

경제개발 구상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장면(張勉) 정부가 내부적으로 거의 완성했던

제1차 5개년 계획을 넘겨받았다.

그 연간 성장률 수치를 5%에서 7%로 높이는 정도의 수정만 해서

1962년 초에 발표했다.

중략

1962년부터 투자를 늘리니 외환(外換)이 고갈되고 인플레가 왔다.

외화보유고는 1961년 말 2억 5000만 달러에서 1963년 6월 말

1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압력 수단으로 원조를 줄인 미국 정부는 재정 긴축을 요구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1963년 한미 간 치열한 교섭을 통해 민정(民政) 전환이 추진되는

다른 한편에선 재정안정화와 환율 현실화 등이 추진되었다.

5개년 계획도 축소 조정해서, 1964년 2월 발표된 보완계획에선

목표 성장률을 7%에서 5%로 낮추고, 사업수를 대폭 줄였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1963년부터 공산품(工産品)

수출이 증가하였다. 1963년 공산품 수출 계획 치는

640만 달러였는데 실적은 주로 아연도철판, 목재 가공품(단판·합판),

섬유의류 등 2810만 달러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던 박정희 정부는

이 공산품 수출 증가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 단계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

1970년대 부가가치 산업을 키위기 위해 중화학공업화라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 조선업, 자동차 공업, 전자공업, 석유화학공업이 시작하게

됩니다. 국가기반사업으로 키웠고 열심히 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1986년 347억 달러 수출액 무역수지 3억 13백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처음으로 기록합니다.

1988년 606억 달러 수출액 무역수지 8억 88백만 달러로

수출액도 급증하게 됩니다. (한국무역협회 기준)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이

이는 1970년대에 건설된 중화학공업이라는 방향성을 정했고,

'그것이 자리를 잡았음을 뜻한다'라는 것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국제 부가가치 흐름에서 한국의 위치를 일거에

더 상류(upstream)로 끌어올리려는 큰 모험이었다.

조선업, 자동차 공업, 전자공업, 석유화학공업 등에서

획기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한국 경제는 봉제·가발·신발 등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한

가공 공업 단계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 중략 ---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전반에 안정화 정책을 통해 내실(內實)을

다진 후 국제경제환경의 호전(好轉)을 맞아 도약했다.

1985년 300억 달러던 수출액이 1988년에는 600억 달러가 되어

3년 만에 100% 증가하였다. 중화학공업품 수출이 급증하였다.

5대 수출 품목도 1980년 섬유류·전자제품·철강제품·신발류·선박에서

1990년 전자전기·섬유류·철강제품·선박·화공품으로 바뀌었다.

이는 1970년대에 건설된 중화학공업이 자리를 잡았음을 뜻했다.

 

1986~88년 3년간 한국의 무역수지가 흑자(黑字)로 돌아섰다.

1876년 조선왕조가 개항한 이후 110년간 한국 경제는 무역수지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외국에서 원조와 차관을 얻고

직접투자를 유치하였다. 그러나 이 3년에 걸친 25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로

외채도 감소하였다. 외채 총액은 1980년 112억 달러에서

1985년 275억 달러까지 증가하였으나,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매년 감소하여 160억 달러로 되었다.

 

2. 의대 쏠림 현상은

한국의 향후 혁신을 꺼뜨릴 것인가?

현재 제3차 대전으로 불리는 반도체 전쟁이

발생하고 있고, 거기에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재 상태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공계 관련 우수인재들이 의대로

편중되는 모습을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1980년대~90년대 이공계 진출하신 분들이

현재 중화학공업, 반도체를 이끌고 있는 분들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어디로 진출했는지 통계적으로 보실 수 있는

데이터입니다.

대입시험에서 자연계 수석 진로 통계를 보면

1) 1980년대

- 이공계 : 9명 / 의대 : 3명

2) 1990년대

- 이공계 : 11명 전원

1980~90년대 이공계로 간 20명 중 9명이

물리학과를 진학했다고 합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현재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님인 윤건수교수님은

1993년 200점 만점 수능에서 191점을 받아 수석을 차지했고,

포항공대 물리학과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유에 대해 아래 인터뷰에 대해 설명합니다.

 

1) 물리학에서 태동한 학문이 많은 데에 대한 자부심

2) 공부를 잘한 친구들은 물리학 진학률이 높았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다만, IMF 외환위기 전후로 수석입학자들이 어디로

입학하는지 갈리게 된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한번 블로그에 포스팅한 부분과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 대입시험에서 자연계 수석 진로 통계

3) 2000년대

- 이공계 : 0명 / 의대 : 4명

4) 2010년대

- 이공계 : 2명 / 의대 : 16명

5) 2020년대

- 이공계 : 0명 / 의대 : 5명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1) IMF 이전에 우리가 보통 회사라고 하는 곳이

노동과 평생직장을 교환하는 곳!

복지에 대한 니즈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함

2) IMF 이후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짐

3) 계층 사다리, 계층 유지 사다리, 노후복지 사다리

3종 사다리 세트를 유지할 곳이 어디냐?

현재는 의사 자격증만 남아있다.

KBS 1 라디오에서 내용 발췌

아래 부분으로 정리했었는데

통계치에서 보여주는 부분과 유사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1/4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반면 평균의사연봉은 올라갔기 때문에 의사면허만큼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직군에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미국도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합니다.

다만, 미국에는 의사만큼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리콘 밸리로 상징되는 혁신기업들이 성공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그 기업들로 몰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었다는 점이 굉장히 부러운 부분입니다.

| 의사 직종 VS 타 직종의 임금 차이

이 부분이 의대 광풍을 만들어낸 팩트라고 봐야 합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이미지 발췌

어떻게 보면 의대를 가는 사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들어낸 것입니다.

의사 말고 다른 직종에서도 돈을 잘 벌 수 있다면

굳이 의대를 가지 않고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

이공대를 선택하는 경우도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돈을 지속적으로

어떻게 벌지에 대해 블로그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본업의 월급만으로는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대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고소득으로 올라갈수록

부를 쌓는 힘의 속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본업만 가지고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그 돈을 가지고

어떻게 굴려서 돈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돈을 축적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막을 수 없는

현상이지만

조금 더 산업구조가 변화될 수 있고,

다양한 직군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의대 쏠림 현상이 덜해질 뿐 아니라

사회 초석이 되는 기초과학이 튼튼해지는

그런 역량이 집중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라가 부강해져야 그 혜택을 국민들이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글을 작성하면서 한국이 잘 살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원천은 80년대, 90년대 학번 즉 제 부모님 세대 혹은

블로그 이웃님들의 부모님 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방향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치열한 연구개발의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있게

국가적으로도 기업에서도 R&D에 많은 연구비를 책정해서

향후 좋은 비전을 바라봤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이미지 발췌

 

저도 요 며칠 아프고 나니

괜히 게을러지고 엄살이 늘고 있습니다.

자꾸 미루는 건 습관이고 생활태도가 되기에

다시 맘을 다잡고 시작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파이팅 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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