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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원산업 이수영 회장의 카이스트에 기부한 이유!

by 불꽃히멀 2024.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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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퀴즈에 출연한 이수영 회장이 나온 부분을

잠시 보았습니다.

'766억을 기부한 회장님이 출연하셨습니다.'가

와닿은 부분은 솔직히 아닙니다.

대단한 부분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 하는 사람과 생각하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그냥 다른 사람입니다.

TVN D ENT에서 이미지 발췌

 

TVN D ENT에서 이미지 발췌

 

부모님이 베풀고 사시는 분들이셨기 때문에,

'돈을 벌면 적어도 사회에 환원해서

사람을 도와주고 살아야겠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 저도 제 딸에게 어찌 보면

'조금씩이라도 베풀고 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아빠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한 부분입니다.

1. KAIST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수영 회장은

KAIST와의 인연은 없다고 합니다.

단지,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의 연설을 들으시고는

깊은 감명을 받고 기부를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

TVN D ENT에서 이미지 발췌
TVN D ENT에서 이미지 발췌
TVN D ENT에서 이미지 발췌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텔레비전 연설...

그 연설 하나로 엄청난 금액을 기부금을 받게 된

카이스트 대학...

지난번에 블로그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IMF 외환위기 전후로 수석입학자들이 대부분

의대로 진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의 토대를 만든

중공업, 반도체, 화학제품은 모두 이공계에

진출한 분들의 노력과 기초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 관련 이력을 찾아보니

부정적인 이력이 많이 남아있어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만, 이수영 회장에게 임팩트 있는 영향력을 남겨

과학기술의 이바지할 수 있게끔 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영어 강의 전면 도입,

하위권 학생 수업료 부과 등 수많은 개혁 정책을 실시했으나,

이를 권위주의로 시행하여 재학생과 교직원을 심하게 압박하였고,

이로 인해 학생들과 교수가 자살하는 일이 터지는 등

여러 사건사고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영어를 잘 못하는 교수들과 전공과 상관없는 교양과목,

심지어 한국사나 일본어 교양 강의를 하는 교수들에게까지

영어강의를 강제한 탓에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나무위키에서 내용 발췌

2. 사업능력과 안목이 중요하며,

기본적으로 근검절약하며

베풀 줄 아는 분들이다

여장부 같은 느낌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80년도에 여기자 시절 해외에 나갔을 때

삼성전자가 광고하던 모습을 보고

국력이 상승했다고 좋아하시던

인터뷰를 보시고는 저도 기분이 무언가

좋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http://www.mediadj.kr/ 에서 이미지 발췌 (사진 제공=KAIST 발전재단)

 

서울경제신문 기자를 하시던 시절엔

정계 인사들과 인연을 바탕으로 기사를

발굴해 갔다고 합니다.

기자 생활은 전두환 시절

서울경제신문이 폐간되면서 기자라는 본업을

과감히 접는 결단을 보여주시게 됩니다.

이는 본인의 용기도 있지만,

집이 잘살았기에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자금도 충분했기에 가능했을 거라 봅니다.

 

아래 부를 축적하시는 내용의 일부를

가져와봤습니다.

당시는 전국에 건설 붐이 불 때였다.

남자도 생각하기 쉽지 않은 모래 채취에

손은 댄 여장부는 짧은 기간 꽤 많은 돈을 모은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모래도 팔고 소도 파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서울법대 동기생이었던 서울신탁은행 돈암동 지점장이

지점의 대리 한 명을 현장으로 보내

입출금 관리를 해줄 정도였다니 당시에 얼마나 많은 돈이

현장에서 오갔나를 짐작게 한다.

1988년 여의도 백화점 5층을 통째로 인수하면서

기자→목축업자→모래 판매업자에 이어

부동산 업자로 변신하며 부를 축척하게 된다

 

하지만, 본인이 처음 장만한 목장 부근으로

경인고속도로 나들목(IC)이 생기면서 목장 터 1만 1400평 가운데

1만 평이 수용되어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된 점,

하천에 모래를 파서 모래 판매업자가 된 점 등은

운도 따라준 점이 있지만,

될 것 같은 사업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업가 다운 추진력과 거기에 따른 원들이 더해져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다들 비슷한 맥락들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이 저 같은 경우에는

실거주 집을 한 채 마련하면,

주담대를 가지고 있고 이를 언제까지

갚아나가고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서

얼마가 더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마련할 수 있을지 어느 곳으로

이사를 갈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게 일반적이죠!

잘 갈아탔다? 대출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받았다?

주식에서 조금이라고 익절을 했다?

그럼 성공한 거죠?

 

이런 부분이 쌓여서 성과를 내면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를 축적한 분들은 생각하는 것부터가

남다르네요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을 하면서 본관 1층에서

기부를 하신 분들의 사진을 형상화해서 만들어 놓은

부분을 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기부를 하신 분들이었는데,

서울대병원 암 병원, 내과 및 외과 등 여러 분야의

발전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 덕분에 의료분야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고 생명을

얻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 거겠죠

 

1) 기업의 이익은 반드시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3억 원 기부)

2)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실천으로 정적한 진심을 나눕니다.

(3억 원 기부)

3) 이름을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더 크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13억 원 기부)

 

어제 와이프와 이야기를 하면서

제주도에 집을 집고 사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저런 데서 살아보자!'라고 했더니,

'돈이나 많이 벌고 이야기해'라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입니다.

우선 제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기부는 네이버 해피빈으로도 하고 있지만,

1년에 얼마씩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벌써 한 해 반이 흘렀고 3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달에는 맥쿼리인프라 주식

15주를 매수했습니다.

이번 달에도 추가 매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예정입니다

자금 압박이 있긴 하지만,

꾸준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제가 생각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꾸준히 무엇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인 거 같습니다. ​​

1) 24년 카카오뱅크 26주 적금 진행 중

→ 24년 6월 만기!

8월 만기로 적금 진행 중

2) 블로그 광고 수익 기준

시간당 비용 약 3,424원 → 5,000원까지 상승 필요

(애드 포스트 수입 월 240,000원으로 상승 필요)

3) 티스토리 지속적으로 관리 진행

​▶ 1달에 USD 10 달성 목표!

4) 24년 주식배당금 목표 설정

→ 배당주 추가 매수 진행 중!

그럼 오늘도 힘내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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